사실 과가 국사학과인지라 조금 쉽게 생각했던 17회 시험은, 2급 컷보다 조금 높은 쪽팔린 점수로 마무리지어졌다. 


돌이켜보니, 정작 전공에는 소홀하면서 무슨 과를 믿는다는 짓거리였나 싶었다.


어쨌든 두 번째 한국사 시험은 그렇게 미미하게 마무리 지어졌고(사실 고등학생 때 제 1회 한국사 시험을 쳤었다. 당시는 일시적으로 3급이 최고 난이도, 논술형 문제도 있었다) 집에서 한 내기도 있었던지라 곧이어 18회 시험을 신청했다. 


신청할 당시만 해도 자신감은 있었다. 암만 고급 1급이라도 한 달이면 되겠지...요새 난이도도 쉬워졌는데 교과서만 봐도 되지 않겠어?


물론 그런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화가 없다만은...중요한 건 시험 일주일 여를 남기고도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1주일동안이나마 인강이라도 짧게 들어서 벼락치기를 해보고자 했다. 마침 이 블로그를 함께 하는 친구 P가 알려주기를 고XX선생의 강의가 약 5일 간 무료로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고교 시절 세계사 강의를 들었던 일도 있어서 한번 들어보기로 했고,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를 한 시간이 되었다. 이틀에 걸쳐 들었던 인강만(고XX선생의 인강 외 포함) 열다섯 개는 됐던듯. 평소에 책상에만 앉으면 에펨하기 바쁘던 처지가 그나마 개선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틀에 걸쳐 너무 달려서 그런가, 삼일 째 부터는 차차 지치기 시작했다. 몇개 듣지 못하고 요약 정리나 보는 걸로 때웠다.

설상가상이라고 해야할런지 사일 째는 학과 야구 소모임에서 모임이 있어서 하루를 꽁으로 날렸다.

시험 하루 전날인 오일째도 학교 갔다 오랴, 몸살기에 낮잠 자버리니 어느새 시험날이었다. 


망했구나, 망했어! 


차라리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그 호기를 부려서 이런 파멸을 예정해 놓은 것인가

온갖 번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어쩌랴, 시험 당일날엔 무를 수도 없는 시험이었다(여담인데 2만 원이 아깝지가 않은지 내 앞자리 수험생은 오지 않았다). 장소는 광운중학교, 하필 날씨도 영하 10도 이하를 바라보는 혹한이었다. 


시험은 사실 어떻게 쳤는지 크게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다시금 깨달았던 것은 한국사 능력검정 시험은 확실히 찌질한 문제를 많이 출제한다는 것이었다. 

일전에 학과 사무실에서 전공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한국사 시험에 관하여 귀동냥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 담진 않겠지만 결코 좋은 평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시험은 그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직전 시험은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든!)

혹자는 이정도가 전공자 수준이라고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단순히 암기가 어렵다고 해서 전공자 수준은 아니다. 

막상 나도 전공 공부를 하면서 암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는 종합적인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해를 얻는게 전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한국사 시험은 단순히 섬세한 암기능력을 요하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객관식 시험이라는 포맷의 한계라고 생각하면 또 어쩔 수 없다 싶지만...

그나저나 흑요석 석기가 나올 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그냥 상식으로 풀걸...


그런데 참 하늘이 도왔는지 벼락치기 효과가 있었는지 

어찌저찌 가채점은 합격 선을 넘었다. 그래도 전공 수업에 충실했다면 더 높은 점수를 바랄 수 있었을텐데, 내 불찰이다...사실 고득점을 받고 나서 위와 같은 소리를 지껄여야 하는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솔직하게 느낀 바를 말하자면 그랬다. 


어쨌든 취지는 좋은 거고 어쨌든 합격선은 넘어서 다행이었다. 또 떨어졌으면...상상만해도 끔찍하구나.

이제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니 전공 공부만 충실히 하고 한번 쳐 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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